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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추석 날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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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영신문 댓글 0건 조회 3,060회 작성일 25-10-0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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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철


이번 추석도 어김없이 옛 노사모 회원과 고() 노무현 대통령 유족인 누님 댁을 찾았다.

시간은 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다허물없이 웃고, 말없이 앉아 있어도 편한 인연이 된 지도 오래다.

그러나 오늘은 어딘가 다르다.

 

박 사장 왔나” 하시는 누님의 목소리에 힘이 없다.


예전보다 살도 많이 빠지셨다. 무언가 오래된 슬픔이 다시금 고개를 드는 듯한 느낌이 스쳐 지나간다. 따뜻한 커피를 앞에 두고, 옛이야기를 하나 둘 꺼내며 그렇게 지난 시간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박 사장, 그때 참 힘들었제, 내가 그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내가 그놈만 오면 속이 까맣게 탔던 기라....”


그때그래, 그날이 있었다. 어느 해 추석이었다.

노 대통령 서거 후, 봉하마을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중에는 진심으로 그분을 기리는 이들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유족인 누님의 집을 찾는 일이 자연스러워지면서, 유족인 누님을 중심으로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누고, 교류하고, 때론 얽히기도 했다그러던 중, 어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자신이 여기서 유족인 누님이 소개해 줘 만난 어느 노사모회원 때문에 피해를 봤다며, 찾아달라고 누님께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노사모란 이름 아래 엮인 사이였지만, 그는 도무지 사람 노릇이 아니었다. 수시로 찾아와 억지를 부리고, 거실 밥통에 있던 밥을 퍼먹으며 스스럼없이 들락거렸다. 피해를 호소하며 누님을 괴롭히는 일이 교묘하게 반복됐다.


그 추석날도 그랬다. 나는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고, 누님께 전후 사정을 들은 순간, 울분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리고 폭력을 썼다. 분노가 손을 앞질렀다. 달아나는 그를 쫓아가 무차별로 때렸다. 지금 생각해도, 그 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분노의 장면으로 남아 있다


그날 저녁, 그자가 방송국에 제보해 메인 뉴스에 크게 보도됐다.

노사모 행동 세력 무고한 시민 폭행...” 진실은 묻혔고, 나는 구속 기로에 섰으며, 결국 폭행죄로 기소됐다. 그러나 그 사건 후 그자가 다시 나타나 밥통에 밥 퍼먹는 일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그 일은 어느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갔다. 하지만 유족인 누님은, 추석만 되면 그날의 일을 잊지 않으셨다. 그분이 겪은 두려움, 그 안에서 내가 보인 분노의 모양, 그리고 그날 이후의 침묵까지도. 오늘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시는 누님의 눈빛에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뒤섞여 있었다. 내게는 여전히 잊히지 않는 장면이고, 어쩌면 살아가는 동안 두고두고 꺼내어 보아야 할 장면이기도 하다.


추석이 되면 늘 봉하에 간다. 그곳엔 사람의 온기가 있고, 지켜야 할 무언가가 아직도 남아 있다. 그리고 언젠가, 나 역시 그날의 분노를 품은 채, 고요히 기억 속으로 걸어 들어갈 것이다


 -박원철(진영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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