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귀신, 노무현 대통령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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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영신문 댓글 0건 조회 2,718회 작성일 25-10-08 22:51본문
박원철
유시민 작가가 어느 날 생림면 노무현 대통령 누님을 찾아와
“누님, 제가 지금 노 대통령 책을 쓰는데 노 대통령 옛날이야기 좀 해주세요.” 했다. 그러나 누님은 한참을 마주 보고 앉아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기억이 너무 많아 갑자기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는지, 아니면 너무 아파서 꺼낼 수 없었는지, 그 자리엔 조용한 바람만이 흘렀고, 유작가는 아무 말 없이 수첩을 덮고 갔다고 했다.
서거 후,
우리 몇몇 노사모 회원들이 자주 누님의 집을 찾았다.
누군가는 위로가 필요했고, 누군가는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여름이면 삼랑진에서 난 딸기를, 겨울이면 따뜻하게 구운 고구마를 먹으며, 이명박 정권 성토로 긴긴밤을 태웠다. 시간이 그렇게 흐르는 가운데 딸기와 고구마 사이에서 누님의 기억도 하나둘 꺼내졌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이윽고 구수하게, 때로는 눈물 섞인 웃음으로....
노무현 대통령 아버지는 총각 때 일본에 돈 벌러 나가 있었다.
결혼 후 귀국해 생림면 사촌 마을에 정착했고, 그때 일본에서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게 되어 귀국 후에도 금요일이면 미국인 목사와 교인들이 찾아와 구역예배를 드렸다.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어린 소녀였던 누님은 밖에서 몰래 귀를 기울이며 듣던 그 찬송가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고, 고된 시절이었지만 그 찬송가 가사는 묘하게 따뜻하고 아름다웠다고 했다. 하지만 예배가 끝나면 어머니는 늘 불만을 터뜨렸다. "왜 집안에 예수쟁이 귀신을 들이느냐" 며 부부싸움을 했고,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꼭 요강 단지를 작대기로 부수었다고 했다. 그게 아버지의 방식이었다. 집안의 불만도, 세상에 대한 분노도 그렇게 부쉈다며, 누님은 웃으며 말했다.
“언니가 시집갈 때 나한테 단단히 일러줬지. 아버지가 요강을 부수려 하면, 뒤에서 허리를 확 껴안으라고. 그래야 힘을 못 쓴다고, 그 말만 믿고 나도 그렇게 살았지 뭐” 그런 날 밤은 우리는 군고구마를 먹으며 웃었고, 긴긴밤을 하얗게 보낸 아침이면 서럽던 기억도 어느새 포근한 이야기로 남아 있었다.
누님의 말은 마치 오래된 흑백사진 속 인물들이 다시 생생히 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 시절, 찬송가와 요강단지, 어린 노무현을 업어 키우던 누님의 두 팔, 모든 것이 역사가 되었고, 동시에 우리의 삶이 되었다. 한 시대를 잃은 슬픔 속에서도, 딸기와 고구마처럼 작고 달콤한 기억들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었다.
그 밤들 덕분에 우리는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이제, 누군가의 물음에 누님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그때 참 별일 많았제...”
-박원철(진영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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