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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한 시는 시가 아니다 / 김진

작성일 18-05-30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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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조회 54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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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한 시는 시가 아니다/김진



아무 거나 닥치는 대로 먹기만 한 것은 아니다. 상상력이라는 고단백질과 열량이 높은 상징이니, 알레고리니, 역설이니, 아이러니니 하는 지방질을 골고루 먹었다. 편식은 건강에 나쁘다는 생각으로 참여시니, 정신시니, 도시서정시니, 여성주의시니 인스턴트 식품과 매식까지 했다. 이렇게 먹다 보니 어느 덧 비만한 시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비만한 시는 시가 아니다. 그러므로 다이어트를 해야 했다.
비만한 사람은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다이어트를 한다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확실한 과학적인 체중감량 100%의 성공률 운운하며 다이어트를 해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공복을 이기지 못해 조금만 조금만하고 먹다보니 다시 더 뚱뚱해졌고, 그 절망의 골은 더욱 깊어만 갔다.

컴퓨터 키보드는 망가졌고, 매달 배달되던 시잡지가 하나둘 줄어들더니 급기야 한 권의 잡지도 들어오지 않는다. 간혹 전해오는 동인지나 새 시집들을 보면 어렴풋한 추억에 젖게 된다. 그렇지, 시인이었던 적이 있었지. 다시 거울을 보게 된다. 난해한 이미지들로 퉁퉁 부어오른 살, 오! 살. 살과의 전쟁이다.
시중에 떠돌아 다니는 무분별한 다이어트 프로그램이 실패의 원인이다. 풀무원 다이어트는 고○○에게, 한방요법은 최○○에게, 덴마크식 다이어트는 노○○에게, 나이트 다이어트는 류○에게나 어울리는 방법이지 내 것이 아니다. 내 나름대로 독창적인 방법이 있어야겠다.

우선 인스턴트 식품과 매식을 그만두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건강한 시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상상력이라는 고단백질과 높은 열량의 지방보다는 적당량의 지방과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해야 한다. 그리고 유산소운동으로 전체적인 비만을 제거하고 툭 불거진 이미지나 처진 아랫배같은 비유는 근력강화운동으로 형체를 고정시킨다. 유산소운동과 근력강화운동은 반복해야 효과가 나타나므로 성실함이 필요하다. 그 성실함은 건강한 시, 적어도 형태의 흐트러짐이 없는 시를 만들어낼 것이다.

아쿠아마린

막 건져내 물좋은 원석을 연마할 때마다 떨어져나간 것은 투명한 생선비늘이었다.

스페트로 스코프에 빛이 통과할 때마다 나의 눈을 흐리게 했던 것은 어머니의 생선칼이었다.

흰 살 생선이 어머니의 칼에 저며지고 흰 생선뼈가 꿈틀거린 것은 막 건져낸 물좋은 원석의 여름 바다빛 살기였다.

시장 좌판 비린 도마 위에 등푸른 생선이 토막쳐 질 때마다 부서져 나간 것은 어머니의 푸른 눈물이었다.

시 「아쿠아마린」은 1행씩 4연으로 구성된 짧고 이미지의 연결이 쉬운 단순한 시이다. 단숨에 쉽게 씌어진 부분도 있겠지만 별로 고칠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다시 읽어 보니 너무나 상식적인 결론으로 시가 밋밋하게 느껴졌다. 키 큰 사람의 꾸부정한 허리처럼 힘이 없어 보였다. 왜 그런가 해서 들여다보니 4연의 ‘어머니의 푸른 눈물’이 앞의 연들에 비해 긴장감이 떨어졌다. 각 연의 긴장된 생선비늘―칼―살기의 이미지가 4연의 눈물로 인해 힘의 균형이 깨어졌다.
아무래도 어머니의 눈물이라는 보편적인 정서가 각 연의 긴장된 정서와 맞지 않았고 시장 좌판의 어머니의 눈물과 같은 동등한 여름 소낙비같은 이미지가 새롭게 필요해 보였다. 무엇보다 보석 아쿠아마린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단순한 어머니의 눈물로는 미흡하게 느껴졌다. 이로써 시 「아쿠아마린」은 단어 하나를 고친 경우가 되었다.

아쿠아마린

막 건져내 물좋은 원석을 연마할 때마다 떨어져나간 것은 투명한 생선비늘이었다.

스페트로 스코프에 빛이 통과할 때마다 나의 눈을 흐리게 했던 것은 어머니의 생선칼이었다.

흰 살 생선이 어머니의 칼에 저며지고 흰 생선뼈가 꿈틀거린 것은 막 건져낸 물좋은 원석의 여름 바다빛 살기였다.

시장 좌판 비린 도마 위에 등푸른 생선이 토막쳐 질 때마다 부서져 나간 것은 어머니의 짓푸른 생선칼이었다.

아쿠아(aqua)는 ‘물’을, 마린(marine)은 ‘바다’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온 말이다. 아쿠아마린은 그 이름처럼 바다물빛의 아름다운 보석이다. 열대 지방의 뜨거운 햇빛이 속으로 스며든 바다물빛의 보석이다. 사파이어처럼 짙은 청색의 장중함이나 터키석의 무거운 남색보다는 푸른, 브라질의 보석이다. 루비, 에머랄드, 다이아몬드처럼 귀한 보석은 아니지만 그 깨끗함으로 세인의 사랑을 받는 준보석이다.
얼마 동안 보석의 빛의 세계에서 이미지 하나 줍는 작업을 했었다. 몇 달을 빛 속에 갇혀 지낸 적도 있었고 어둠 속에서 넘어지고 깨어져서 무릎의 상처가 아문 적이 없었다.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했고, 모래사막의 거친 바람 속에서 고생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빛의 세계로 다가가면서 옛 현인들도 만나게 되었고 설화와 고전의 세계도 접했다.

혹은 친구도 만나고 친구를 떠나보내기도 했었다. 그러다보니 생명의 빛으로 다가오는 보석도 있었고, 사자의 빛으로 다가오는 보석도 있었다. 이들 중 아쿠아마린은 생명의 빛으로 다가온 보석이다. 많지 않은 밝은 빛으로 다가온, 특히 애착이 가는 보석이고 시이다.
아쿠아마린 역시 처음의 원석은 시커먼 광물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세공사의 연마에 의해 빛이 만들어지면서 비로소 생명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세공사는 생명의 연금술사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원석의 연마과정과 시장 좌판에서 생선을 파는 어머니의 이미지를 병치함으로써 나의 시 「아쿠아마린」은 태어났다.

세공사의 연마과정에서 떨어져나가는 빛과 등푸른 생선의 투명한 비늘과 좌판 도마 위에서 토막치는 어머니의 생선칼날에서 이 시의 날카로운 긴장을 만들어 낸 것이다. 처음의 ‘어머니의 눈물’보다는 ‘어머니의 짓푸른 생선칼’로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 세울 수 있었다. 워낙 짧고 단순한 이미지의 시였기 때문에 단어 하나만을 고쳐도 이미지가 어느 정도 살아날 수 있었다.

시인들의 시창작 방법이 각양각색이듯 시를 고치게 되는 과정도 다양할 것이다. 한 여류시인은 시를 수정할 때마다 머리를 감는다고 한다. 머리를 감다보면 전 날 써 놓은 시나, 오래 전에 써 놓은 시가 이렇게 고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또 어떤 시인은 연필로 원고지에 쓴 시를 지우개로 지우면서 고쳐 쓴다고 한다.
그러나 앞의 고전적인 습관이거나 컴퓨터의 수정키를 누르며 직접 고치는 습관이거나 시를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일은 시가 마음대로 고쳐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시는 시인의 순간적인 정서를 자연스럽게 유로시킨 것이므로 한 번 써 놓은 작품은 더이상 손댈 수 없다는 낭만적인 견해를 주장하는 시인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적인 작품이 탄생하는 행운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머리를 감으면서, 지우개로 지우면서,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시는 상상력이 건강하고 형태의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 하나의 보석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정밀한 세공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난해한 이미지, 감상에 젖어 퉁퉁 부어오른 살의 무게를 덜어내야 한다. 무딘 무기로 잘 베어내지 못하고 피를 흘리게 되면 난해하거나 알맹이가 없는 시가 되고, 덕지덕지 잘못 덧붙이면 난삽하고 치졸한 시가 되기 쉽다. 그러므로 시인은 항상 상상력이라는 거대한 광산에서 캐어 온 보석들을 잘 연마하여 아름답고 빛나는 시로 다시 태어나게 해야겠다. (김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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